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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Guitar 2016년 2월호] Nuno Bettencourt & Richie Kotzen 신년 특별 대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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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Guitar 2016년 2월호] Nuno Bettencourt & Richie Kotzen 신년 특별 대담

세우잡이 2016.01.19 13:28



현대 기타 신을 수놓은 2명의 베테랑이 기적의 태그! 2016년 새해를 장식하는 초호화 대담이 YG 독점으로 실현!

Nuno Bettencour & Richie Kotzen


Funky Words Of Great Guitar Socialites

흠잡을 데 없는 록 정신의 해후!


뛰어난 테크닉과 천성적인 리듬감, 그리고 감성적인 록 애티튜드...

고고한 정신과 "예술"을 끊임 없이 만들어 가는 누노 베텐코트와 리치 코젠이 YG를 위해 열정적인 대담을 펼쳤다.

그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 보자.



인터뷰&글: Jun kawai

촬영&협력: William Hames(all pix by william hames/except *)




누노 베텐코트와 리치 코젠. 모두 훵크 뮤직에 바탕을 둔 그루브한 특색을 지닌 테크니컬 기타 플레이어인 두 사람은 동시에 보컬로서도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해안 출신으로 같은 해에 데뷔하는 등 공통점이 많다.

반면, 지금까지의 활동 이력으로 보자면 큰 차이가 있다. 익스트림의 멤버로 데뷔한 누노는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해체 후에는 여러 솔로 프로젝트에 착수. 최근에는 재결성한 익스트림으로 단속적인 라이브와 동시에 인기 팝스타 리아나의 밴드로 연주하는 등 메이저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편, 누노와는 반대로 솔로 아티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한 리치는 포이즌과 미스터빅에 가입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긴 하지만, 영구적인 밴드에서 활동한 기간은 현재 The Winery Dogs를 포함해도 한참 짧다. 그리고 작품이 적은 누노에 비해 발매한 앨범 수는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게 공통점과 반대점 모두 많은 두 사람이지만, 감성이 향하는대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예술가 타입이라는 점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그들이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함께 공연한 적은 없지만 사실 이전부터 사이 좋은 친구였다고 한다.

이번에 이루어진 대담 인터뷰 때에도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커리어는 다르지만 신념 부분에서 통하는 그들은 아마추어 시절의 이야기나 뮤지션으로서의 자세 등을 화제삼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YG: 오늘은 친구 두 분이 자리하셨는데, 우선 두 분의 첫 만남은 언제였나요?

Nuno Bettencourt(이하 NB): 『GUITAR WORLD』지의 표지 촬영할 때(90년)였나? 리치가 나를 알아봐준 게 아마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거야(웃음). 농담은 접어두고 처음 만난 건 그 때가 처음이야. 연주자로서는 그 이전부터 인식하고 있었겠지만. 그 당시 우리들은 참 젊었지.

Richie Kotzen(이하 RK): 맞아. 그 때 했던 인터뷰를 나중에 되돌아 보니까 실제로 하지 않았던 말들이 내가 얘기한 것처럼 쓰였더라고. 그 자리에 3명(다른 1명은 렙 비치)이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잘 구분이 안 되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

NB: 그랬어? 몰랐네. 어쨌든 그 후로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둘 다 아티스트로 살아남았구나. 처음(영기타의) 표지에 실린 뒤 벌써 20~25년 정도 지났지. 이번에는 둘이 함께 하는군. 뭐랄까 새삼스레 긴장되네. 리치와 뭔가 함께 해야한다는게 말이야. 너는 항상 앨범을 계속 만들잖아. 더와이너리도그스도 있고, 솔로 앨범도 있고...

RK: 왠지 그런 이미지가 있어. 항상 뭔가 레코딩하고 있구나라는 얘길 듣긴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 해. 뻥하니 큰 구멍이 뚫린 듯한 시기도 있으니까(웃음).

NB: 나도 항상 바빠 보이지만 그다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상태는 아닐지도 몰라...  회사를 옮겼다는 건 말해 둘게.

RK: 아, 브라질에서 그 얘기 들었어.

NB: (15년도)11월 1일부터 드디어 사업이 정식으로 시작되었어. 3~4팀의 아티스트가 있는데 그들을 프로듀스하고 있어. 미래의 젊은 뮤지션을 발굴하는 거야.

RK: 유투브 같은 데서 찾는 거야?

NB: 아니, 일상 생활 속에서 찾아. 예를 들어, 핼러윈 파티가 열릴 때 젊은 애한테 연주해보라고 시켜. '이 녀석 대체 뭐지?' 싶은 애가 있으면 그런 재능을 발견하는 거야.

RK: 그런게 있구나!

NB: 내가 새로운 시대의 목소리가 되겠노라 하는 사람들을 찾는 거지. 그들이 'THE VOICE'나 'AMERICAN IDOL'같은 프로그램에 발탁되서 망가져 버리기 전에 말이야.

RK: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서 좋은 노래를 들려준다 해도 꼭 그 사람이 아티스트로서 뛰어난 것은 아니니까.


YG: 흥미롭네요. 그런데 누노는 66년, 리치는 70년에 각각 태어났지만 비슷한 세대라고 할 수 있죠. 어린 시절 기타를 연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RK: 나는 어릴 때 가족들 앞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걸 좋아했어. 2층집이었는데 계단 위를 무대 삼아 재주를 부렸지. 이상한 옷을 걸친 채로 말이야. 어느 날 누군가가 "리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보는게 어때?"라고 해서 피아노를 배우게 됐어. 다섯 살 때였나. 별로 재미 없었어. 아마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내용이 재미있지 않았을 거야. 피아노를 그만둔 어느 날 개라지 세일에서 기타를 팔고 있는 걸 발견했지. 아버지는 "저 기타를 사도 너는 연습을 안 하니까 안 될거야 아마"라고 말하면서도 사주셨는데 우선 기타 선생님한테 레슨을 받으러 갔어. 선생님이 이 기타로는 연주할 수 없다고 해서 그날 밤 실질적으로 나의 첫 기타가 되는 깁슨의 "Marauder"를 사게 됐지. 그 때부터 연습하기 시작했어.

NB: 나는 10남매 중 막내인데 가족들이 뭐든 악기를 연주하고 있어서 항상 음악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 어느 날 기타를 튕겼던게 계기였을까. 어릴 때는 기타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타입이었어.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연주했지. 그 후로 점점 능숙해지고 나니 연주해 보고 싶은 곡들이 자꾸만 생겼어. 예를 들면, 'Stairway To Heaven'(레드제플린의 71년 『LED ZEPPELIN Ⅳ』수록)이라던가.

RK: 맞아, 한 곡을 연주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재미를 느끼게 돼. '이 곡을 연주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중요해.

NB: 사실은 리아나 투어 때 크루나 댄서 중에 기타를 쳐보고 싶지만 너무도 다른 세계라 손을 못 대겠다는 사람이 꽤 있었어. 투어 중에 레슨을 하게 되었는데 'Sweet Child O'mine'(건즈앤로지스의 87년 『APPETITE FOR DESTRUCTION』수록)을 연주하는 법이었어. 처음에 코드를 기억하는게 좀 어렵긴 하지만 "아, 곡을 연주했다!"라는 기쁨을 가지게 되면 비로소 그 녀석 것이 되지.

RK: 하지만 오랜 기간 악기를 다루다 보면 그런 목적을 너무 쉽게 잃어 버리곤 해. 내 경우에는 기타를 시작한 뒤 2~3년 정도 지나니까 몇 몇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는데 10대 시절에는 테크닉을 연마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어버렸어. "이런 연주는 어때?"라는 보여주기 식으로... 누구도 연주한 적 없고 어느 누구도 연주할 수 없는 테크닉을 익히고 싶다는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러던 몇 년 동안 나는 어째서 내가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어.

NB: 솜씨를 겨루는 올림픽이 되어 버렸던 것이지.

RK: 응, 내 첫 앨범(89년 『RICHIE KOTZEN』)도 그런 연주들 뿐이었어. 어느 날 문득 깨달았지. '전혀 재미있지 않아.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거지?'라고. 이게 아냐, 난 원래 곡을 연주하거나 만들고 싶어서 기타를 시작했던 거야. 곡 위주여야 한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고 내 연주를 다시 검토했어.

NB: 그런 점에서는 우리 세대에게 에디 반 헤일런이야 말로 충격이었지. 그의 테크닉이 훌륭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도 흉내내려 했어. 하지만 그런 멋진 테크닉만 의식해서 에디가 얼마나 테크닉과 곡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 그게 가장 중요한데도 말이야. 본질은 우선 곡에 있어. 멜로디가 있고 거기에 멋진 솔로가 등장하는데 지금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는 곡이라는 점이 위대한 것이지. 에디와 레드제플린의 지미 페이지는 둘 다 그런 균형 감각이 압도적으로 뛰어났어. 그들은 멋진 밴드란 어떤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외에도 위대한 기타리스트는 많지만 두 사람을 꼽자면 그들이야.

RK: 나에게 있어 그런 사람을 꼽자면 에릭 클랩튼이야. 엄청 좋아해. 항상 진화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네가 한 말에는 전적으로 찬성해.

NB: 80년대에 자란 기타리스트는 기타 플레이가 아크로바틱한 방향으로 진화했던 그 시대에 매우 영향을 받았어. 보다 빠르게 연주하는 사람이 등장하거나 스티브가 인기를 얻었지. 물론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 배우는 것은 중요하고 또 해야만 해. 하지만 '아, 이젠 모르겠어. 나는 누구고 뭘 하고 있는 거지. 앞으로 뭘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 그러니까 항상 자신을 말려야 해. 어릴 땐 그게 어렵지. 젊기 때문에 마냥 달리고 싶어 지니까.

RK: 한 가지 생각났어.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나는 리드 기타리스트야. 솔로를 연주하면 그만이라구"라고 한 적이 있어(웃음).

NB: 리드냐 리듬이냐 그것이 문제로군.

RK: 뭐, 어렸을 때니까.



YG: 두 분이 밴드를 시작했을 때 고향의 라이브 신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RK: 내가 나고 자란 펜실베니아주의 레딩 지역에는 매우 좋은 공연 환경이 이루어졌었어. 멋진 공연장도 많고 펜실베니아와 델라웨어, 뉴저지 등 3개주에서 구성된 Tri-state area에는 좋은 밴드들이 공연하러 자주 왔었어. 나도 자주 보러 갔지. 멋진 기타리스트도 엄청 많았고. 그 지역 신에 있던 20대 드러머가 어디선가 내 연주를 보고 함께 하자고 했었어. 자기 친구랑 셋이서 같이 하자고. 친구는 나보다 2~3살 많았지.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 밴드에 들어오게 되었어. 그는 나에게 밴드에서 연주하는 노하우나 음악 전반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르쳐 주었어. 그리고 그 밴드는 인기가 많아져서 악기를 운반하는 트럭을 2대 사용한 적도 있어. 커버 밴드였는데 말이야(웃음). PA나 조명도 자비로 부담했어. 그런데 그 드러머는 싸움 때문에 결국 잘리고, 아까 말했던 친구도 그만둬서 이전과는 완전 다른 밴드가 되어버렸어. 그 뒤에 깨달았지. 커버곡을 연주하는 게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자작곡으루 승부를 보기로 하고 혼자 힘으로 5곡이 담긴 EP를 제작했어. 메이저 레이블도 흥미를 보여서 곡을 더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약하자는 말은 없었어. 화가 나있던 그 즈음 Shrapnel Records에서 연락을 주었지. (리치가 말한 밴드는 ARTHURS MUSEUM이라는 밴드로 88년에 『GALLERY CLOSED』라는 EP를 발표했다)

NB: Shrapnel이라면 마이크 바니?

RK: 응. 실은 그 때 나는 Shrapnel에 꽂혀 있었어. 그 레이블에 들어가려고 온갖 애를 썼지.

NB: 마이크는 수완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다음엔 누굴 발굴할까 모두 주목하고 있었지. 나는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RK: 그런데 갑자기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에 들어간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 "리치, 믿을 수 없어. 네가 잡지에 실렸다구"... 깜짝 놀라서 나도 잡지를 사러 갔는데 정말 내가 실렸더라구(『GUITAR PLAYER』지의 "Spotlight" 칼럼). 그리고 머지않아 Shrapnel과 레코드 계약을 체결했지. 그 계기로 난 펜실베니아를 떠났어.


YG: 누노의 고향은 어땠나요?

NB: 바로 얼마 전 추수감사절 연휴에 동해안에 있는 본가에 갔었어. 집에 돌아가니 많은 기억들이 되살아 나더라구. 연주했던 장소, 처음에 공연했던 장소.. 함께 음악을 듣고 다녔던 친구의 집이 어떤 스타일이었는지. 어렸을 때 축구장인가 어디서 열렸던 밴드 콘테스트에 나가서 세 밴드가 연주하는 것을 줄곧 바라봤었지. 거기 출전한 밴드들을 동경했어. 반 헤일런을 알기 전의 이야기야. 가까이에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히어로가 있으면 자극이 돼.

그들은 퍼포머, 즉 로큰롤러야. 나는 록큰롤러도 아무것도 아닌 기타를 연습 중인 그저 어린애였지. 형과 함께 밴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바에서 연주하게 되었어. 그곳에 바비 오브라이언이라는 드러머가 나타나서 자기네 밴드로 들어오라고 했어. 형하고 같이 하던 밴드가 있었기 때문에 망설였는데 "그 밴드는 계속 해도 돼. 가족이니까 그대로 해"라고 말해줬어. 그만 뒀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밴드에 들어갔지. 

바비네 밴드는 내가 기타를 연주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멋있어 보이는지 가르쳐 주었어.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무대에 올라 록커가 되는 것이나 의상을 고르는 방법 등등. 리치가 아까 했던 얘기랑 똑같아. 그러자 갑자기 공연에 오는 관객이 늘어났어. 맨 앞까지 사람들이 나와서 가까이에서 우리를 계속 바라봤지. 나는 엄청 부끄러워서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어(웃음). 

그 때 내가 주목한 것은 그 밴드의 보컬이었어. 노래를 잘 하는지가 아니라 선글라스를 쓰고 주위를 압도하는 분위기와 애티튜드를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지. 그를 동경하게 되었어.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내가 무얼 지향하는지 알게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할 수 있어. 'THE VOICE' 이야기를 아까 했지만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면 고생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생략되어 버리지. 갑작스레 스타 취급을 당하니까.

RK: 맞아.

NB: 음악을 학교로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로 진학하는 일련의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하는거야. 존재를 인정 받으려면 해야만 하는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이지. 실은 어느 날 친구들한테 전화가 와서 바비가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문병을 가고 싶었지. 그가 없었다면 나는 익스트림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어. 바비와 SINFUL이라는 밴드를 했던 덕분에 게리(쉐론: vo)가 나를 볼 수 있었으니까.

나에대한 소문이 보스톤에 퍼지고 어느 날 게리라는 녀석이 나와 함께 밴드를 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 SINFUL은 레코드 계약 직전이었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밴드를 그만둔 상태였어. 게리의 권유에 내 마음 속 누군가가 "당장 가!"라고 말했던 거야. 지금까지 함께 해온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동시에 나 스스로의 성장에 대해서도 깨달았어. 반드시 그런 움직여야 할 때가 오는 법이지.

RK: 본능에 따른 거네.

NB: 그렇기 때문에 바비와는 꼭 만나고 싶었어. 병실에 들어가니 그는 발작을 일으킨 뒤 회복되고 있던 참이었어. 그의 곂에 걸터 앉자 나는 정말 굉장한 기분을 맛보았어. 나에게 영감을 주고 이끌어 준 사람이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런 은혜는 절대 잊지 못해. 고향에서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말이야.

RK: 우리 본가 이웃에 살았던 에릭 루디라는 기타리스트 또한 그래. 그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데, 나도 어릴 땐 자주 공연을 보러 갔어. 나에게 있어서는 기타의 신이라고 생각될 정도인데 어느 날 그런 그와 함께 기타를 연주할 기회가 생겼어. 그 때 그가 나의 캐릭터를 여러모로 이끌어 내 주었지.




YG: 두 분 모두 '훵키한 그루브를 하드록에 도입한 뛰어난 기타리스트'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RK: 응, 맞아.

NB: 그래서 우리 앨범이 잘 안 팔린건가... (웃음).


YG: 아뇨 아뇨, 록에 그런 느낌을 실은 게 다른 어설픈 연주자들과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NB: 아까도 이름을 거론한 레드제플린이나 반 헤일런 그리고 에어로스미스 같은 밴드의 노래 중 나는 훵키한 곡들을 좋아했어. 반 헤일런이 훵키하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아직 있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이상한거야.

RK: 맞아.

NB: 'Mean Street'(81년 『FAIR WARNING』수록)를 들어보라구. 스윙감이 있잖아. 'Hot For Teacher'(84년 『1984』수록)도 대단한 리듬이야. 레드제플린 또한 'The Crunge'(73년 『HOUSES OF THE HOLY』수록)가 좋아. 그런 훵키한 요소를 좋아했지. 그리고 완전히 빠져버린게 팻 트래버스야. 그게 결정적이었지. 예전에는 'Snortin' Whisky'(80년 『CRUSH&BURN』수록)를 자주 들었어.

RK: 그 곡 참 멋지지.

NB: 그리고 나서 들었던 그의 라이브 앨범 『LIVE! GO FOR WHAT YOU KNOW』(79년)가 나의 바이블이 되었지. 죽치고 앉아 계속 들었어. 내 인생곡이라고 할만 한 곡을 발견한듯 했지. 드럼은 타미 앨드릿지, 베이스는 피터 "마스" 카울링. 훵크한 베이스와 로킹한 라인이 나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어. '라이브는 이런 사운드가 만들어 지는구나', '처음엔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연구했어.

RK: 하지만 어째서 내 사운드가 훵키해졌는지 그 명확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아? 들어왔던 음악뿐만 아니라 자라온 환경 등 여러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해.

NB: 그야 물론이지. 리치, 좋은 지적이야. 나는 프린스의 엄청난 팬인데...

RK: 응, 나도.

NB: 그렇다고 자리잡고 앉아서 '자, KISS와 프린스를 섞어 로킹한 곡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식으로 머리를 굴리진 않았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뿐이야. 그저 매력적으로 느낀 것을 헤비하면서도 거칠게 기타로 연주하지. 그러다보면 '이거 멋진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만들어 지는 것 뿐이야. 그런데 익스트림에게 처음부터 그런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들의 포지션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야. 당시 메탈은 대부분 빠른 16비트의 심플한 곡이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 그런 리듬의 곡을 만들었을 때(훵키한 리듬의 곡) 주위의 반응은 "이게 뭐야?"라는 식이었어. 레이블에서도 "이 밴드를 도대체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하지?"라고 혼란스러워 했고.

RK: 재미있네. 내가 L.A.로 가서 Interscope와 레코드 계약을 했을 때도 늘 싸웠던게 기억나. 왜냐면 내가 쓰는 곡은 소울이 주체였거든. 록도 쓰긴 했지만 내가 만들고 싶었던 앨범은 대중한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대릴 홀이 일렉기타를 공격적으로 연주하는 것 같은 작품이었어.  

내가 그런게 하고 싶다고 얘기하자 레코드 회사는 하나 하나 들먹이며 "그렇게 하면 안 돼. 왜냐하면..." 하고 따지고 들었어.

NB: 사고 방식에 융통성이 없어서 그래.

RK: 응. 그 후 이적한 레이블에서도 좀 더 소울풀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나에게 백인이라서 힘들다고 말했지. 그런데 나중에 춤추면서 노래하는 자미로콰이가 나왔어. "뭐야. 내가 하고 싶었던 거랑 똑같은 걸 저녀석은 하고 있잖아!"라고 했더니 "아.. 그래. 근데 쟤는 영국 출신이잖아"라고 하더라구(웃음).

NB: 그래, 실제로 'Get The Funk Out'(익스트림 90년 『PORNOGRAFFITTI』수록)이란 곡을 들려줬을 때도 레코드 회사는 어떤 라디오 방송이 이런 곡을 틀어줄런지 좀처럼 감을 못잡는거야. "장르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우선 그냥 이런 밴드가 있습니다라는 느낌으로 틀어주지 않을까? 그리고 나서 반응이 어떤지 그냥 지켜보면 되잖아"라고 말했지. 하지만 반응이 나쁘면 실패로 간주돼. 백인이 R&B를 해도 받아들여지게 되었던 이후 5년 정도 지나 발표했더라면 리치같은 뮤지션도 더욱 성공했을텐데... 결국 명작이라고 불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타이밍과 시대 나름이라고 생각해. 너무 앞서나가서 실패한 경우도 많잖아.

RK: 그렇군. 재미있네.



YG: 훵키한 스타일의 기타 플레이는 리듬감이나 그루브가 말해주죠.

NB: 맞아, 중요한 건 리듬이야.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듣고 있던지 나는 항상 나도 모르게 드럼 흉내를 내고 있었어. 무릎을 치거나 하면서. 맞아, 나는 드럼을 가장 먼저 시작했거든. 기타보다 드럼이 좋았어. 이전에 기타 클리닉을 했을 때 기타에 관한 어드바이스를 구하길래 이렇게 대답했어. "드럼을 쳐봐" 당연히 "네??"라고 의아해 했지. "스케일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드럼을 칠 수 있게 되면 리듬감이 몸에 배고, 리듬에 맞춰 노래도 할 수 있게 돼. 그렇게 되면 곡을 쓰는 방법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 그리고 밴드 전체의 연주가 달라지지"라고 가르쳐 줬어. 어렸을 때 기타를 연주하는 애들끼리 둘러모여 연주했던 적이 있는데, 정작 밴드로 잼을 하니까 모두 그루브의 첫 번째 박이 어딘지도 모르는 거야. 혼자 연주할 땐 엄청 잘하더니.

RK: 아, 뭔지 알겠어.

NB: 기타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악기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중요해. 내 기타가 곡의 어느 부분에 관련되어 있는지 알아야 하지. 기타리스트라고 해서 기타만 생각하고 음악을 대하는 자세는 올바르지 않아. 나도 기타리스트로서가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인정 받고 싶었어. "너 기타 치는구나", "응, 맞아. 내가 선택한 악기가 때마침 기타였어"라는 정도의 느낌으로.

RK: 응, 기타는 도구야. 크리에이티브한 비전을 만들기 위한 여러 도구 중 하나이지. 그런데 곡을 쓸 때 넌 바로 멜로디가 떠올라 아니면 드럼이 먼저 떠올라? 나는 멜로디가 떠오르면 바로 드럼이 어떤 리듬이 될지 번뜩 떠오르거든.  

NB: 나도 마찬가지야.

RK: 역시. 멜로디와 리듬은 뗄 수 없지.


YG: 두 분이 데뷔한 이후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록 신에도 큰 변화가 일었죠.

NB: 익스트림의 본격적인 성공은 90년대 초였지.

RK: 그러고 보면 아까 얘기했던 『GUITAR WORLD』의 표지를 너와 렙과 함께 장식했을 때 인기투표가 실렸어. 1위가 누노, 내가 2위, 3위가 스티비 살라스.

NB: 정말? 이야, 그루비한 기타리스트의 인기가 높았구나.

RK: 그 시기 리스너들 사이에서는 훵키한 기타 스타일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게 아닐까? 그 잡지의 취재를 받은 다음 날, 나는 좀 더 훵키한 『FEVER DREAM』(90년)이라는 앨범 제작에 착수했어. 그러고 보면 그 때 누노와 함께 취재를 받았던게 재미있는 인연 같네.

NB: 맞아... 90년대라고 하면 익스트림의 훵키한 사운드를 레이블에서 즉시 OK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들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건 분명해. 익스트림을 관리했던 A&R은 사운드가든과 이미 계약한 상태였는데 다른 한 밴드(마더러브본)와 합체한 템플오브더도그의 앨범도 발매했었으니까.

RK: 나에게는 힘든 시대였어. 난 포이즌에 가입해서 앨범(93년 『NATIVE TONGUE』)을 만들고 첫 싱글(「Stand」)은 아주 잘 팔렸지. 앨범의 초기 판매 실적도 좋았고, 뮤직비디오도 자주 방송되었어. 그 후로 어느 정도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묘한 공백 시기를 보냈어. 다음 싱글을 내려했을 때는 MTV에서 "더이상 니네 곡은 틀 수 없어"라고 하길래 다 끝났구나라고 느꼈지.

많은 밴드들이 그런 괴로움을 겪었던 것 같아. 포이즌은 아직 괜찮은 쪽이었어. 하지만 내가 솔로로 레이블을 이적했을 때는 나도 한물간 아티스트로 분류되었지. 그 밴드에 있었다는 이유로 말이야. 내가 만든 앨범(94년 『MOTHER HEAD'S FAMILY REUNION』)도 이해받지 못했어. 내용은 60년대 후반~70년대 전반에 나왔을 법한 지미 헨드릭스 스타일의 곡이었지. 게다가 익스트림에서도 들을 수 있는 훵키하고 소울풀한 요소도 있었고. 레코드 회사는 그걸 어떻게 마케팅해야 할지 갈팡질팡했어. 그래서 나에게는 90년대가 '넌 이제 안 돼'라는 말을 계속 들어야 했던 시대였지. 그런 날 구해준 것은 일본의 레코드 회사였는데 그곳의 투자를 받아 앨범을 만들었어.

NB: 그 당시 대다수의 밴드가 경험한 상황이랑 똑같네.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이 태풍이 잠잠해질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자'라는 느낌이었어. 현명한 대처였다고 생각해. 그 후로 얼마 지나 '그럭저럭 태풍은 사라진 것 같군'하며 모습을 드러냈지.

RK: 휴식과 태풍이라... 멋진 비유군.

NB: 음악 신이 바뀌었다기 보단 비지니스가 바뀌어 버렸지. 다양한 미디어가 이 시대는 무엇이 멋지고 무엇이 구린지를 멋대로 결정했어. 기타 잡지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 같은 기타리스트를 표지에 실었는데 갑자기 별로 연주도 하지 않는 뮤지션을 띄워주기 시작했어. 지금 이렇게 영기타의 취재를 받고는 있지만 그들은 이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개의치 않아. 그저 몇 안 되는 미디어 중 하나일 뿐이지(웃음). 확실히 90년대는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별로 나오지 않았지만, 아직 건재한 연주자가 많이 있다는 걸 많은 잡지에서 알아주지 않는 다는게 유감이야.

RK: 누노 말이 맞아. 확실히 비지니스는 어렵지. 내 커리어가 다시 꽃을 피우게 된 건 그 후 좀 더 지나서 인터넷 세상이 열렸을 때 부터야. 스스로 앨범 제작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가혹한 패턴을 반복하게 됐었지. 레코드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적 판로를 개척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작품을 발표하기 위한 많은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말 기뻤어. 그런 상태에서 제일 처음 만든 앨범이 『INTO THE BLACK』(2006년)이었어. 그 때는 앨범을 만들 생각 같은건 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곡만 모았어. 그걸 모아서 슬쩍 내보였지. 그리고 마음에 드는 곡이 만들어 질 때까지 앨범은 내지 않기로 결정했어. 내 방식대로 마음대로 하겠다고 말이야.

NB: 자유를 얻었구나.

RK: 응. 뭐, 힘들 때도 있었지만. 앨범을 계속 발표해야만 했으니까(웃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아주 행복한 상태야. 마침내 아티스트로서의 자유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거든.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을 안심할 수 있는 상태이지. 지금까지의 나는 늘 그렇지는 못했어. 오랫동안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분야에 놓여져 있었던 듯한 기분이 들거든.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NB: 알아.

RK: 줄곧 물 없는 물고기였어. 레코드 회사의 백업을 받고 있던 때조차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 아까도 얘기 했지만 그게 달라진 건 인터넷 덕분이야. 그래서 이게 나고, 내 방식대로 해 나갈 것이라는 걸 허락 받은 거지.

NB: 쓰고 싶으니까 쓸 수 있는 거야.

RK: 맞아,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와이너리도그스도 그 중 하나야. 첫 앨범 『THE WINERY DOGS』(13년)는 우연히 만들어졌어. 앨범의 완성도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투어를 돌아도 좋을 만한 곡들로 가득했지만, 두 번째 앨범(15년 『HOT STREAK』)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 첫 반응은 "만들지 말자"였어. 영원히 내지 말자는게 아니라 좋은 곡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의미였지. 억지로 하긴 싫었거든. 고맙게도 스튜디오에 들어서니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그리고 앨범이 절로 완성되었지. 이런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기뻤어. 핵심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음악을 실제로 하지 않는 것이야. 다음에 할 것은 지금까지 한 것 보다 더욱 멋있어 질거야. 왜냐면 그걸 할 필요가 생겼을 때 하게 될테니까.

NB: 그게 바로 예술이지. 나도 같은 기분이야. 과거에 해 온 것을 반복하면 젊었을 때는 젊은 대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어. 기다릴 수 없지. 하지만 배후에는 그걸 하는 이유가 있어. 그게 예술에 영향을 주지. 하지만 밴드는 레코드 계약을 체결한 이상 앨범을 내야만 해.

RK: 갑자기 일이 되는 거지.

NB: 맞아, 일이 되어버려. 투어를 해야 하지만 앨범 없이 투어는 불가능해. 물론 스스로에게 거짓말 하면서까지 납득되지 않은 모습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조건이 붙어 있어. 리치가 말하는건 지금의 그는 조건 없이 활동할 수 있다는 말이야. 아무도 머리에 총을 들이대지 않고, 아주 좋은 기분으로 다음 앨범을 만드는 것을 기다릴 수 없게 되는거지. '만들지 않으면 안 돼, 언제 만들지, 어떻게 만들까...' 이런 압박이 없어져. 나도 리치와 같은 배에 탄게 아닐까.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신경쓰지 않는 상태거든. 일적으로는 좋지 않지(웃음). 하지만 마음은 건전하고, 아마 예술적으로도 그런 기분이 드는 쪽이 좋을거야. 나는 최근 헐리우드에서 잼 섹션을 할 기회게 많은데 '내가 나다운 것을 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어. 그에 응답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현장에 가는 일은 절대 없어. '공연장 안에 있는 10명 정도는 뭔가 나다운 연주를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조차 하지 않지.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내가 느끼는 대로 연주할 수 있어.



YG: 그런 의미에서 누노는 자신이 리더가 아닌 리아나의 백 밴드에서 연주한 경험을 통해 배운 점도 있지 않나요?

NB: 많이 배웠지. 리아나 백밴드는 멋진 경험이었어. 물론 리아나라서가 아니라 다른 다양한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배우게 된 것이었지. 이 밴드의 드러머는 스티비 원더의 밴드에서 연주했던 사람이고, 키보드 연주자도 모든 장르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멋진 연주자야. 라이브 후에 꼭 애프터 파티를 여는데 게스트도 함께 연주하면서 분위기를 달구지. 가끔 리아나도 함께 와서 밥말리를 부르기도 해. 다른 문화를 체험한 듯한 기분이야. 처음 그녀의 밴드에 가담했을 때는 평소의 일을 접어두고 휴가를 떠나는 기분이었는데 여기가 제일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 왜냐면 배우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어색하고 낯설어서 '넌 어째서 여기 있는 거야?'라고 자문했지. 집을 잘못 찾아 들어간 녀석처럼 말이야(웃음). 그래서 생각해 봤어. '나는 누구? 익스트림의 누노다. 이러이러한 연주를 해왔다. 어째서 지금 나는 여기에 있는거지?'라고. 그러던 끝에 내 자리가 있다는 걸 깨달았지. 리아나의 공연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어. 거기에 감정을 맞출 수 있는 기타리스트를 찾던 중 나에게 프러포즈가 온 거야. 이런 일이 있었어. 독일에서 투어를 돌았을 때 현지 기타 잡지가 취재를 나왔길래 "모처럼 공연을 보러 와줬구나"라고 했더니 그가 말하길 "아뇨, 그런 음악은 잘 몰라서요..."라며 뒷걸음질 치더라구. 그래도 한 두 곡 정도는 듣고 가라고 했지.

RK: 그랬더니 전부 보고 갔구나.

NB: 맞아. 공연이 끝난 뒤 "제가 잘못 생각했었나봐요. 이렇게 재미있는 공연일 줄 몰랐어요"라고 메일이 왔더라고.


YG: 오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취재를 계기로 두 분의 음악적 콜라보레이션을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을텐데요, 이후 이런 기회가 있을까요?

RK: 물론. 아직 함께 연주한 적은 없지만 분명 재미있을 거야.

NB: 재미있겠는걸. 만약 실현된다면... 아니 분명 기회가 올거라고 생각해. 우리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가 반드시 올거야. 투어에서 만난적이 있기 때문에 리치의 연주는 잘 알고 있어. 그럴 때 나는 리치의 팬이되어 즐기지. 실은 그렇게 팬의 입장에서 그의 연주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싶지 않은 기분도 있지만 말이야(웃음).

RK: 하하하

NB: 하지만 만약 둘이 함께 한다면 엄청 멋질거야. 15분씩 시간을 나눠서 예정된거 없이 마음대로...

RK: 아, 함께 연주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실은 있었어. 뉴욕 클럽이었지 아마.

NB: 아! 그렇구나.

RK: 엄청 재밌었어. 무슨 이벤트 뒷풀이였던거 같은데... 아, 내 공연이었구나! 누노도 같는 날 저녁에 뉴역에서 자기 공연이 있었을거야.

NB: 맞아. 결국 나는 드럼을 쳤었던가? 기타도 연주했었어?

RK: 응, 연주했어.

NB: 정말 그 때 네가 말한대로야. "미안하지만 난 기타로 바로 연주할 수 있는 커버곡은 아는 게 없어"라고 했었지. 드럼이라면 바로 대응할 수 있지만.

RK: 나도 마찬가지야. 즐겨했던 커버곡도 전혀 생각이 안 나더라구(웃음).

NB: 그래서 리치의 곡을 하게 되었지. 어쨌든 언젠가 우리 둘이 한 번 콜라보레이션을 성사시켜야겠어! 







번역: 세우잡이(formo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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